- 주님과 함께하는 나의 하루
여호와는 선하시며 환난 날에 산성이시라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자들을 아시느니라(나훔 1:7).
- 다산, 어른의 하루
낙생어고 고자락지근야 고생어락 낙자고지종야(樂生於苦 苦者樂之根也 苦生於樂 樂者苦之種也, 여유당전서).
해석: 즐거움은 괴로움에서 나오니 괴로움은 즐거움의 뿌리다. 괴로움은 즐거움에서 나오니 즐거움은 괴로움의 씨앗이다.
- 평카박의 다짐
여호와의 시간 속에서 즐거움과 괴로움을 느끼자.
- ChatGPT
폭풍 속 산성과 고락의 순환: 환난이 드러내는 선함
우리 앞에 놓인 두 문장은 한 가지 주제로 모인다. 환난은 피난처의 실재를 드러내고, 고통은 기쁨의 깊이를 빚는다. 첫 문장은 “환난 날”에 선하신 분이 요새처럼 존재한다는 확신을 말한다. 둘째 문장은 “즐거움은 괴로움에서 돋고, 괴로움은 즐거움에서 싹튼다”는 상호생성의 원리를 전한다. 둘을 합치면, 인생의 거친 파도는 무의미한 불행이 아니라 선함과 기쁨을 경험하게 하는 문, 동시에 그 기쁨이 다시 삶을 단단히 하여 다음 파도를 건너게 하는 순환의 리듬이 된다.
산성의 의미: 흔들림 속에서 비로소 보이는 견고함
평온할 때 요새는 풍경의 일부일 뿐이다. 그러나 바람이 매섭게 불어올 때, 우리는 비로소 그것을 피할 곳으로 인식한다. 선하신 보호는 위기가 왔을 때 더 선명해진다. 환난은 그 보호를 새롭게 발견하는 확대경이자, 우리가 의지하던 불안정한 것들을 걸러내는 체다. 그러니 환난은 선함을 소거하지 않고, 오히려 선함의 밀도를 드러낸다.
고와 낙의 뿌리: 서로를 낳는 두 결
“낙생어고, 고생어락.” 기쁨은 고통에서 태어나고, 고통은 기쁨에서 싹튼다. 풍요는 느슨함을 낳고, 느슨함은 다시 어려움을 부른다. 반대로, 어려움은 절실함을 낳고, 절실함은 감사와 기쁨의 감각을 날카롭게 세운다. 이 상반된 두 결이 번갈아 흐르며 삶의 결을 만든다. 중요한 건 고통을 미화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이 기쁨을 감각하는 능력을 길러준다는 사실이다. 빛은 어둠이 있을 때 더 또렷하고, 단맛은 쓴맛을 통과할 때 깊어진다.
만남의 지점: 환난이 기쁨의 토양이 되는 방식
환난 속에서 산성은 피로한 발걸음을 받아 주고, 그 안에서 우리는 숨 한 번 고르며 다음을 바라볼 시야를 회복한다. 바로 그 회복이 기쁨의 씨앗이다. 살아 있음 자체에 대한 경의, 작은 친절에 대한 놀라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조용한 확신이 싹튼다. 그러면 기쁨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버텨 낼 힘이 된다. 그리고 그 힘은 다음 고비에서 다시 피난처를 찾게 하고, 그 과정에서 선함은 더욱 신뢰를 얻는다. 이렇게 요새의 선함과 고락의 순환은 서로를 북돋우며, 우리를 천천히 단단한 사람으로 만든다.
오늘의 통찰: 피난처를 향해 걷는 한 걸음
폭풍이 심할수록 산성의 불빛은 더 따뜻해 보인다. 눈앞의 파도는 삶의 결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 의미를 새기는 조각칼일지 모른다. 환난이 올 때 우리는 두 가지를 기억할 수 있다. 하나, 피할 곳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선함의 표지라는 것. 둘, 이 시간을 통과한 뒤에야 비로소 맛보게 될 깊은 기쁨이 기다린다는 것. 그래서 우리는 절망이 아니라 귀의(歸依)와 성찰로 한 걸음을 떼게 된다. 그 한 걸음이 곧, 폭풍 너머의 길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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