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님과 함께하는 나의 하루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야고보고 4:4).
- 다산, 어른의 하루
유상지여하우불이(唯上知與下愚不移, 논어).
해석: 가장 지혜로운 사람과 가장 어리석은 사람은 변하지 못한다.
- 평카박의 다짐
성화되어 가고자 하며 변해야 한다.
- ChatGPT
변치 않는 중심, 분별하는 변화
“세상과 벗이 되려는 마음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길”이라는 야고보서의 경고와, “오직 상지(上智)와 하우(下愚)만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논어의 문장은 서로 상충해 보입니다. 하나는 결별을, 다른 하나는 가변을 말하니까요. 그러나 두 문장은 같은 지점을 가리킵니다. 무엇을 결코 바꾸지 말아야 하는가, 그리고 무엇은 상황에 맞게 바꿔야 하는가라는 분별입니다. 바꾸지 말아야 할 것은 존재의 중심을 규정하는 궁극적 충성이고, 바꿔야 할 것은 그 충성으로 세상을 대하는 방식과 표현입니다.
‘세상과 벗함’의 의미
야고보서가 말하는 ‘세상’은 단순히 자연이나 사회 자체가 아닙니다. 인간의 욕망과 효율, 즉시적 이익을 최종 기준으로 삼는 질서입니다. 그 질서와 친구가 된다는 것은 가치 판단의 자리를 넘겨주는 행위입니다. 관계를 끊으라는 뜻이 아니라 주인을 바꾸지 말라는 요청입니다. 사람을 사랑하되, 유행과 성공을 최종 권위로 받아들이지는 말라는 뜻이죠. 중심이 신속히 바뀌면 모든 판단은 그때그때의 편익으로 미끄러지고, 결국 자신도 목적이 아니라 수단으로 전락합니다.
변하지 않음의 두 얼굴: 지혜와 고집
논어의 문장은 변하지 않음이 언제 미덕이고 언제 폐단인지를 비춘다. 상지는 원칙에 닻을 내렸기에 불필요한 동요가 없다. 반면 하우는 무지와 자기애로 굳어 변화를 모른다. 겉으로는 둘 다 ‘안 움직임’처럼 보이지만, 하나는 깊이로부터의 평정이고 다른 하나는 얕음에서 비롯한 고집이다. 이 구분은 야고보서의 경고와 만난다. 중심을 지키는 불변은 지혜의 흔적이고, 중심을 잃은 불변은 세속적 욕망에 붙드는 어리석음일 수 있다. 결국 문제는 무엇에 매여 있는가이지, 움직였는가 멈췄는가가 아니다.
바꿀 수단과 지켜야 할 기준
지켜야 할 기준은 인간의 존엄, 진실성, 자비와 정의 같은 규범적 핵심이다. 이것이 중심의 언어다. 반면 바뀌어야 할 것은 전달과 실천의 양식이다. 소통 방식, 조직 구조, 기술의 활용, 일하는 습관, 심지어 의례와 관습도 시대와 맥락에 맞게 유연해야 한다. 중심을 위해 주변을 바꾸는 것은 배신이 아니라 충성이다. 나침반의 북쪽은 고정되어 있지만, 여행자의 발걸음은 지형에 맞춰 계속 조정된다. 방향이 분명할수록 발걸음은 더 기민해진다.
거리 두기와 관대함의 균형
‘세상과 벗하지 말라’는 말은 인간과 담을 쌓으라는 명령이 아니라, 가치와 거리를 조절하라는 분별의 요청이다. 거리를 두면 비난 대신 관대함이 가능해진다. 유행을 절대화하지 않으면, 그 유행을 즐기는 이들과도 평화롭게 어울릴 수 있다. 반대로 중심을 상실하면, 우리는 늘 무언가에 매달려 흥분하거나 분노한다. 중심이 튼튼하면 타인의 선택을 강요할 필요가 없고, 자신의 선택도 조용히 지속될 수 있다.
두 문장은 이렇게 합창한다. 절대적 중심에는 충성하고, 그 중심을 드러내는 방법은 끝없이 배우며 바꿔라. 변치 않는 믿음은 사람을 배타적으로 만들지 않고, 오히려 유연한 실천을 낳는다. 반대로 변하지 않는 것이 고집뿐이라면, 우리는 어느새 세속의 기준을 신성시하며 그 앞에 굳어버린다. 세상 속을 지나되 세상에 예속되지 않는 길, 그것이 등대 같은 불변의 기준과 바람을 읽는 돛 같은 변화의 기술이 만나는 자리다. 오늘 우리의 질문은 단순하다. “나는 무엇과 친구가 되려 하는가?” 그 답을 분명히 할 때, 우리는 흐름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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