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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Truth

좋은 말 + 좋은 말 = 좋은 말

'26.01.16(금) 감정보다 그리스도

평카박 2026. 1. 16.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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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과 함께하는 나의 하루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히브리서 13:12).

- 다산, 어른의 하루

공자대왈 유안회자호학 불천노 불이과 불행단명사의(孔子對曰 有顔回者好學 不遷怒 不貳過 不幸短命死矣, 논어).

해석: 공자가 말했다. "안회가 배움을 좋아해서 화를 옮기지 않고 허물을 고치는 데 망설이지 않았으나, 불행히도 단명했습니다."

- 평카박의 다짐

감정에 빠지지 않고 예수님을 바라보자.

- ChatGPT

성문 밖의 고난과 배움: 거룩과 덕이 만나는 자리

예수는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다”(히브리서 13:12)고 말합니다. 공자는 “유안회자호학, 불천노, 불이과, 불행단명사”(顔回는 배움을 즐기고, 분노를 옮기지 않으며, 같은 잘못을 두 번 범하지 않았으나, 불행히도 요절하였다)라 증언합니다. 하나는 자기희생으로, 하나는 자기수양으로 내면의 변화를 이룬 길입니다. 성문 밖의 고난과 짧은 생의 수양은 서로 다른 언어 속에서 거룩과 덕이 만나는 길로 이어집니다.

밖에서 시작되는 중심

성문 밖은 제도와 성소, 안전한 담장 바깥입니다. 예수의 희생이 ‘밖’에서 이루어졌다는 진술은 거룩이 폐쇄적 질서의 내부에서만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경계 밖에서 시작된 움직임이 오히려 중심을 새롭게 한다는 역설을 드러냅니다. 보호막이 걷힌 자리에서 드러난 것은 힘이 아니라 사랑의 방향이었습니다. 그 사랑은 안과 밖을 가르는 경계를 넘어, 안을 다시 살게 하는 새로운 중심을 만들었습니다.

분노를 옮기지 않는 덕성

안회의 덕목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불천노”, 곧 분노를 다른 이에게 전가하지 않는 태도입니다. 이는 감정을 부정하거나 눌러두는 회피가 아니라, 감정의 흐름을 자신에게서 멈추려는 책임의 윤리입니다. 전가된 분노는 사회를 파편화하고, 반복된 상처를 낳습니다. 안회는 그 고리를 자신의 자리에서 끊음으로써, 배움이란 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감정의 질서를 바로 세우는 일임을 보여줍니다.

되풀이를 끊는 기억

“불이과”는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는다는 선언입니다. 반복은 인간의 습관이지만, 기억은 반복을 멈추게 합니다. 기억은 단죄가 아니라 전환을 위한 기억, 곧 그때의 나를 오늘의 나로 넘겨세우는 다리입니다. 잘못을 부정하지 않고 정확히 이름 붙이는 용기, 그리고 다른 선택을 시도하는 단호함이 모여 되풀이의 고리를 끊습니다. 거룩이 죄의 힘을 꺾어 관계를 회복하는 일이라면, 덕은 과오의 힘을 꺾어 삶의 방향을 새롭게 하는 일입니다.

대가를 치르는 사랑과 수양

히브리서의 언어는 “피”라는 대가를 통해 거룩을 말하고, 논어의 언어는 “수양”이라는 대가를 통해 덕을 말합니다. 둘 다 값없이 얻어지지 않습니다. 희생은 상처의 책임을 자신이 감당하려는 결단이며, 수양은 자신의 충동을 타인에게 떠넘기지 않으려는 절제의 결단입니다. 전자는 관계의 붕괴를 되돌리는 사랑의 비용이고, 후자는 반복의 관성을 멈추는 배움의 비용입니다. 다른 길처럼 보이나, 둘은 모두 ‘내가 먼저 멈춘다’는 한 문장으로 만납니다.

짧음의 깊이

안회는 요절했습니다. 생의 길이가 덕의 깊이를 보증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의 삶은 말합니다. 반대로, 짧지만 깊은 생은 오래지만 얕은 생을 넘어섭니다. 성문 밖의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시간의 길이보다 의미의 농도가 역사를 가릅니다. 의미의 농도는 웅변이나 명성에서 오지 않고, 타인을 살리기 위해 자신을 깎아내리는 선택, 그리고 오늘의 나를 어제의 나와 다르게 만드는 작은 충실에서 우러납니다.

경계의 뒤집힘

‘밖’은 배제의 언어이자 시작의 언어입니다. 배제된 자리에서 시작된 일은, 붙잡고 지키던 내부를 되살립니다. 덕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의 분노를 옮기지 않겠다는 사소한 결심이 공동체의 공기를 바꿉니다. 그리하여 거룩과 덕은 서로 다른 전통의 말이면서, 동일한 현실을 가리킵니다. 경계 밖에서 시작된 사랑과 절제가 안의 질서를 새롭게 세웁니다.

분열과 냉소의 시대일수록, 우리는 누구에게 화살을 돌리거나 같은 실수를 변명으로 반복하는 데 익숙해집니다. 두 텍스트는 다른 길을 가리킵니다. 상처의 고리를 자신에게서 멈추는 사랑, 과오의 고리를 기억으로 끊는 배움. 이 둘이 만나는 곳에서 비로소 중심이 다시 세워집니다. 성문 밖에서 시작된 길은, 결국 성문 안을 살리기 위한 길이었습니다. 짧지만 깊은 충실의 선택들이 모여 공동의 내일을 바꿉니다.

- 이미

성문 밖의 희생과 배움이 한 길로 흐르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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