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님과 함께하는 나의 하루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요한복음 13:1).
- 다산, 어른의 하루
유유독서일사 상족이추배성현 하족이영소증려 차방시오인본분(唯有讀書一事 上足以追配聖賢 下足以永詔烝黎 此方是吾人本分, 여유당전서).
해석: 위로는 성현을 뒤따라가 짝할 수 있고 아래로는 백성을 깊이 깨우칠 수 있으니, 독서야말로 우리 인간이 해야 할 본분이다.
- 평카박의 다짐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인 성경을 통해 주님의 사랑을 깊이 묵상할 수 있어야 한다.
- ChatGPT
끝까지 사랑을 견디게 하는 지혜: 떠남의 순간에 남는 두 가지
요한복음 13장 1절은 예수께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면서도,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고 말합니다. 한편 「여유당전서」의 구절 “唯有讀書一事… 此方是吾人本分”은, 세상에서 사람이 붙들어야 할 본분으로 독서(읽고 사유하는 일)를 꼽으며, 위로는 성현을 본받고 아래로는 백성을 오래 이롭게 하는 길이라고 강조합니다.
겉보기엔 하나는 ‘사랑’, 다른 하나는 ‘독서’에 관한 말처럼 보이지만, 두 문장은 한곳을 가리킵니다. 사람이 끝까지 지키는 마음은 저절로 지속되지 않으며, 그 지속을 떠받치는 내면의 토대가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사랑이 방향이라면, 독서는 그 방향을 끝까지 잃지 않게 하는 힘과 질서를 제공합니다.
1) “끝까지”라는 단어가 드러내는 사랑의 성격
‘끝까지 사랑한다’는 표현은 감정의 고조를 말하기보다, 관계의 마지막 순간까지 책임을 놓지 않는 결단을 보여 줍니다. 떠남이 가까울수록 마음은 흔들리기 쉽습니다. 남겨질 사람들을 생각하면 불안과 두려움이 커지고, 작별은 필연적으로 상실을 동반합니다. 그럼에도 요한복음의 문장은 사랑이 상황에 의해 축소되지 않고, 오히려 시간의 압력 속에서 더 분명해지는 중심이 있음을 말합니다.
이 ‘끝까지’에는 두 겹의 의미가 스며 있습니다. 하나는 시간의 끝—마지막 순간까지, 또 하나는 깊이의 끝—가능한 최대로, 자기 자신을 내어 주는 자리까지입니다. 사랑은 때로 말보다 침묵으로, 선언보다 돌봄으로 드러납니다. 떠나는 이가 남겨진 이들을 “끝까지” 사랑한다는 것은, 지금 당장의 편안함보다 남겨질 이들의 삶을 더 크게 바라보는 시선을 선택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2) 독서는 왜 ‘본분’이라 불렸을까
여유당의 문장은 독서를 단순한 취미나 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사람 됨의 핵심을 지키는 일로 위치시킵니다. “위로는 성현을 추배하고, 아래로는 백성을 영원히 일깨운다”는 말은 읽는 행위가 곧 시간을 넘어서는 대화라는 사실을 전제합니다. 우리는 책을 통해 이미 지나간 삶과 사유를 만나고, 그 만남을 통해 자신의 언어와 판단을 다듬습니다.
여기서 ‘성현을 본받는다’는 표현은 누군가를 우상화한다는 뜻이라기보다,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더 좋은 마음의 형태를 배우려는 태도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백성을 일깨운다’는 말은 거창한 설교가 아니라, 읽고 생각한 사람이 결국 자기 삶의 방식으로 주변에 영향을 남긴다는 현실적 통찰로도 읽힙니다. 독서는 내면을 정리하고, 삶의 기준을 세우며, 무엇보다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오래된 지혜를 현재로 옮겨오는 통로가 됩니다.
3) 떠남 이후에 남는 것: 사랑은 기록을 통해 오래 간다
떠남은 “더는 곁에 있을 수 없음”을 뜻하지만, 사랑이 완전히 사라진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떠남 이후에 무엇이 남는지가 사랑의 진짜 무게를 드러냅니다. 누군가의 사랑은 남겨진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고, 그 기억은 종종 말과 글, 이야기와 기록을 통해 형태를 얻습니다.
요한복음 자체가 그런 기록의 예입니다. 예수의 사랑은 한 순간의 사건으로만 남지 않고, 공동체의 언어가 되어 전해집니다. 여유당의 구절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한 사람이 쌓아 올린 사유가 문장으로 남을 때, 그 문장은 시대를 건너 다른 사람의 마음을 붙듭니다. 결국 독서는 사랑이 사라지지 않게 하는 저장고이자, 사랑이 왜곡되지 않게 하는 기억의 질서가 됩니다.
4) 사랑과 독서가 만나는 지점: 사람을 세우는 지속성
사랑이 ‘끝까지’ 가려면, 순간의 감정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마음을 지탱하는 기준, 관계를 바라보는 관점, 갈등과 상실을 통과하는 언어가 필요합니다. 그 언어와 관점은 흔히 읽고 숙성된 생각에서 자랍니다. 반대로 독서가 ‘본분’이 되려면, 그것이 결국 사람을 향해야 합니다. 책 속의 지혜가 자기를 뽐내는 장식이 아니라, 타인을 살피고 공동체를 세우는 방향으로 흘러갈 때, 읽기는 비로소 제자리로 돌아옵니다.
그래서 두 문장은 한 문장으로 합쳐질 수 있습니다. 끝까지 사랑하려는 마음은 지혜를 필요로 하고, 지혜를 기르는 읽음은 결국 사랑을 향해 열려 있어야 한다. 떠남의 순간에도 사랑을 놓지 않는 태도와, 시대를 넘어 사람을 일으키는 독서의 본분은 모두 “내 삶이 누구를 위해, 무엇을 남기며, 어떻게 지속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입니다.
남겨짐의 시간을 밝히는 빛
누군가는 떠나고, 우리는 남겨집니다. 그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위로나 정보가 아니라, 끝까지 사랑할 수 있다는 가능성과 그 가능성을 지탱하는 깊은 지혜입니다. 요한복음 13장 1절이 보여 주는 사랑의 결은, 마지막까지 관계를 포기하지 않는 중심을 말합니다. 여유당의 문장은, 그 중심이 허공에 뜨지 않도록 삶을 단단히 묶어 주는 길로서 읽음을 가리킵니다. 사랑이 우리를 사람답게 만들고, 읽음이 그 사랑을 오래 견디게 한다면, 떠남과 남겨짐 사이의 시간도 완전히 어두워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 이미지

'좋은 말 + 좋은 말 = 좋은 말' 카테고리의 다른 글
| '26.02.19(목) 먼저 뜻을 구하는 신중함 (0) | 2026.02.19 |
|---|---|
| '26.02.13(금) 말씀의 요점 전달하기 (0) | 2026.02.13 |
| '26.02.11(수) 知天命 (0) | 2026.02.11 |
| '26.02.10(화) 성경의 깊은 이해 (0) | 2026.02.10 |
| '26.02.09(월) 즐거운 열정 (0) | 2026.02.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