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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3.03(화) 강건함이 바탕이 된 바른 말

평카박 2026. 3. 3.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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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과 함께하는 나의 하루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에베소서 3:16).

- 다산, 어른의 하루

자로문사군 자왈 물기야 이범지(子路問事君 子曰 勿欺也 而犯之, 논어).

해석: 자로가 군주를 섬기는 자세를 묻자 공자가 답했다. "속이지도 숨기지도 말고, 바른 말을 하는 것이다."

- 평카박의 다짐

강건한 속사람을 바탕으로 바른 말을 전하자.

- ChatGPT

속사람의 강건함이 정직한 말을 낳는다

어떤 말은 개인의 기도처럼 깊숙이 내려가고, 어떤 말은 공적인 자리에서의 용기처럼 바깥을 향해 선다. 에베소서 3장 16절은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라고 말한다. 반면 『논어』에서 공자는 “자리가 군주를 섬기는 일을 묻자, 공자가 말하기를 ‘속이지 말고, 간하여 바로잡게 하라(勿欺也 而犯之)’”라고 답한다. 한쪽은 내면을 강건하게 하는 힘을, 다른 한쪽은 관계 속에서의 정직을 강조한다. 둘은 방향이 달라 보이지만, 실은 같은 중심을 공유한다. 속이 단단해질수록 말은 더 정직해지고, 정직한 말은 다시 속을 더 단단하게 만든다.

에베소서의 언어는 은혜와 능력의 언어다. ‘속사람’은 겉모습이나 성취가 아니라, 선택과 양심과 사랑이 자리 잡는 내면의 핵심을 뜻한다. 그 핵심이 강건해진다는 것은 단순한 기분의 고양이 아니라, 흔들리는 상황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 힘을 얻는 일이다. 반대로 『논어』의 문장은 윤리와 책임의 언어다. 군주에게 아첨하거나 거짓으로 맞추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말하고 필요하면 ‘범한다’, 곧 거슬러서라도 바로잡으라는 뜻이다. 여기서 ‘거스름’은 반항을 위한 반항이 아니라, 관계를 살리기 위한 정직한 충돌이다.

둘을 이어 주는 연결고리는 두려움이다. 사람을 속이게 만드는 것도, 해야 할 말을 삼키게 만드는 것도 대개 두려움에서 출발한다. 잃을까 봐, 미움받을까 봐, 불이익이 올까 봐 우리는 말을 비틀거나 침묵을 선택한다. 그래서 내면이 강건해진다는 것은 단지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의 지배에서 한 걸음 벗어나는 일이다. 그때 비로소 정직이 ‘가능한 선택지’가 된다.

성령으로 강건해진 속사람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라는 표현은 힘의 근원을 바깥 조건에서 찾지 말라는 초대처럼 들린다. 상황이 좋아서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상황이 흔들려도 무너지지 않도록 안쪽이 새 힘을 얻는 것이다. 속사람이 강건해지면 사람은 더 이상 모든 것을 통제하려 들지 않는다. 대신 자신이 지키고 싶은 가치—진실, 사랑, 정의—를 중심에 두고 살아갈 용기를 얻는다. 이 강건함은 거칠고 공격적인 강함이 아니라, 불안에 끌려가지 않는 차분한 힘이다. 말하자면 “내가 나를 속이지 않는 힘”이다.

속이지 말고, 간하여 바로잡게 하라

공자의 한마디는 관계의 윤리를 날카롭게 드러낸다. 권력 앞에서 거짓이 가장 쉽게 번성한다. 상대가 듣고 싶어 하는 말만 골라 하면 당장은 안전하다. 그러나 그 안전은 관계를 병들게 한다. ‘속이지 말라’는 것은 진실을 숨기지 말라는 뜻이면서, 동시에 상대를 ‘관리’하려는 마음을 내려놓으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리고 ‘간하라’는 단순히 비판하라는 말이 아니라, 상대의 더 나은 길을 위해 책임 있게 말하라는 요청이다. 말이 칼이 되지 않도록 마음은 정직해야 하고, 정직이 무례가 되지 않도록 태도는 절제되어야 한다.

내면의 힘과 공적 책임

두 문장을 함께 읽으면 한 가지 역설이 선명해진다. 정직은 기술이 아니라 상태라는 점이다. 정직한 말을 하려면 말솜씨보다 먼저 마음의 근력이 필요하다. 내면이 약하면 사람은 진실을 ‘말할 수 없는 것’으로 느낀다. 반대로 내면이 강건하면 진실은 ‘말해야 할 것’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성령으로 강건해진 속사람은, 공자의 말처럼 권력 앞에서도 속이지 않고 바르게 간언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한다.

또 하나의 연결은 사랑이다. 기독교적 언어로는 사랑이 “진리 안에서” 자란다고 말할 수 있고, 유교적 언어로는 충(忠)이 단순 복종이 아니라 상대를 살리는 마음에서 나온다고 말할 수 있다. 속사람의 강건함이란 결국 사랑을 버티게 하는 힘이다. 사랑이 없으면 간언은 공격이 되고, 간언이 없으면 사랑은 방임이 된다. 둘은 서로를 필요로 한다.

우리는 어떤 자리에서든 ‘작은 군주’를 만난다. 조직의 위계, 가족의 힘의 균형, 사회적 분위기, 심지어 스스로의 욕망까지. 그 앞에서 우리는 종종 자신을 속이며 타협한다. 이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정보가 아니라, 더 깊은 중심이다. 속사람이 강건해질 때, 우리는 사람을 이기기 위해 말하지 않고 관계와 공동선을 살리기 위해 말하게 된다. 그리고 그 말은 상대를 꺾는 소리가 아니라, 방향을 돌리게 하는 빛이 된다.

마지막으로 두 문장은 이렇게 속삭이는 듯하다. 안에서부터 단단해져라. 그래야 바깥을 향해 정직해질 수 있다. 강건한 속사람은 침묵의 비겁을 넘어, 사랑의 정직으로 나아가게 한다.

- 이미

빛으로 단단해진 속마음이, 두려움 대신 정직한 목소리로 바깥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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