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님과 함께하는 나의 하루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골로새서 3:5).
- 다산, 어른의 하루
인자필유용 용자불필유인 (仁者必有勇 勇者不必有仁, 논어).
해석: 인한 사람은 용기가 있지만 용기가 있다고 다 인한 사람은 아니다.
- 평카박의 다짐
성숙한 자는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일 수 있는 용기가 있다.
- ChatGPT
참된 용기는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탐심을 내려놓는 마음과 인의 용기
골로새서 3장 5절은 인간 내면의 어두운 욕망을 “땅에 있는 지체”라고 부르며, 그것을 죽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음란, 부정, 사욕, 악한 정욕, 탐심은 단지 겉으로 드러나는 잘못된 행동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그것은 마음의 중심이 무엇을 향해 있는지를 묻는 표현이다. 특히 탐심은 우상 숭배라고까지 말해진다. 이는 사람이 무엇인가를 지나치게 붙들고, 그것을 삶의 최종 목적처럼 섬기게 될 때, 마음의 질서가 무너진다는 뜻이다.
논어의 “인자필유용, 용자불필유인”은 또 다른 방향에서 인간의 내면을 바라본다. 어진 사람에게는 반드시 용기가 있지만, 용감한 사람이 반드시 어진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용기는 겉으로 보기에 강한 태도나 두려움 없는 행동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용기가 인과 결합되어 있지 않다면, 그것은 쉽게 무모함이나 폭력성, 자기 과시로 변할 수 있다. 참된 용기는 힘 자체가 아니라, 그 힘을 어디에 쓰는가에 의해 판단된다.
욕망은 마음의 방향을 바꾼다
탐심은 단순히 더 많이 갖고 싶어 하는 마음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충분히 보지 못하게 만들고, 타인과 세상을 끊임없이 비교하게 만드는 내적 기울기이다. 탐심이 깊어질수록 사람은 자신이 가진 것보다 갖지 못한 것에 더 집중한다. 그러면 감사는 줄어들고 불안은 커진다. 마음은 자유로워지는 대신, 원하는 대상에 묶이게 된다.
이 점에서 탐심이 우상 숭배라는 말은 매우 날카롭다. 우상은 반드시 눈앞에 세워진 형상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사람이 절대적인 가치처럼 붙드는 것, 그것 없이는 살 수 없다고 여기는 것, 그것을 얻기 위해 양심과 관계와 진실까지 희생하게 만드는 것이 우상이 될 수 있다. 탐심은 마음속에 보이지 않는 제단을 만들고, 사람으로 하여금 그 앞에 자신을 바치게 한다.
용기는 내면의 질서에서 나온다
논어의 말은 용기를 도덕적 뿌리와 분리해서 보지 않는다. 어진 사람은 반드시 용기가 있다고 말하는 이유는, 인이 단순한 부드러움이나 착함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은 타인을 귀하게 여기고, 마땅한 것을 분별하며, 자신의 이익만을 중심에 두지 않는 마음이다.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은 두려움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을 수 있다. 왜냐하면 그에게 중요한 것은 자기 보존만이 아니라 옳은 방향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용기만 있고 인이 없다면, 그 용기는 위험해질 수 있다. 두려움을 모르는 사람이라도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다면, 그는 쉽게 상처를 주는 사람이 된다. 결단력이 있더라도 탐심에 사로잡혀 있다면, 그 결단은 더 큰 욕망을 이루기 위한 도구가 될 뿐이다. 따라서 용기는 크기보다 방향이 중요하다. 무엇을 향한 용기인가, 누구를 살리는 용기인가, 어떤 마음에서 나온 용기인가가 본질이다.
내려놓음은 약함이 아니라 강함이다
골로새서의 말씀과 논어의 구절은 서로 다른 전통에서 나왔지만, 함께 읽을 때 하나의 중심을 드러낸다. 인간의 참된 강함은 욕망을 마음대로 채우는 데 있지 않고, 욕망이 자신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는 데 있다. 또한 참된 용기는 자기 힘을 증명하는 데 있지 않고, 선한 마음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다스리는 데 있다.
세상은 종종 더 많이 가지는 사람, 더 강하게 밀어붙이는 사람, 더 빠르게 성취하는 사람을 용감하다고 부른다. 그러나 내면의 탐심이 커질수록 사람은 외적으로 강해 보여도 실제로는 더 많은 것에 끌려다닌다. 반대로 욕망의 압력을 이겨내고, 타인을 해치지 않으며, 옳은 길을 선택하는 사람은 조용해 보여도 깊은 용기를 가진 사람이다.
인과 절제, 참된 자유의 조건
두 문장이 만나는 지점에는 ‘마음의 주권’이라는 주제가 있다. 무엇이 내 마음을 다스리는가. 탐심인가, 인인가. 욕망인가, 사랑인가. 자기중심적 갈망인가, 더 큰 선을 향한 책임인가. 이 질문에 따라 한 사람의 용기와 삶의 방향이 달라진다.
탐심을 내려놓는 것은 삶의 기쁨을 포기하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마음을 노예 상태에서 풀어내는 일이다. 인을 품은 용기는 세상을 거칠게 정복하려 하지 않는다. 그것은 자신을 먼저 다스리고, 타인을 함부로 대하지 않으며, 욕망보다 선을 더 크게 여긴다. 그래서 참된 용기는 마음의 정결함과 연결되고, 참된 절제는 인간을 작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더 자유롭게 만든다.
결국 두 문장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듯하다. 욕망에 끌려가는 힘은 강함이 아니며, 선을 향해 자신을 다스리는 마음이야말로 진정한 용기이다. 탐심을 우상으로 삼지 않는 사람, 인을 바탕으로 용기를 내는 사람은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도 자기 마음의 중심을 잃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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