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ke A Better Human Life

모든 사람이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The Truth

좋은 말 + 좋은 말 = 좋은 말

'25.12.03(수) 한 걸음 뒤에서 나를 보자

평카박 2025. 12. 3. 09:45
728x90

- 주님과 함께하는 나의 하루

여호와의 친밀하심이 그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있음이여 그의 언약을 그들에게 보이시리로다(시편 25:14).

- 다산, 어른의 하루

손지상왈 산하유택손 군자이징분질욕(損之象曰 山下有澤損 君子以徵忿窒慾, 주역).

해석: 손괘의 상 풀이에서 말했다. "산 아래에 못이 있는 것은 덜어냄이니 군자는 이를 통해 화를 누르고 욕심을 막는다."

- 평카박의 다짐

하나님과의 친밀함으로 나 자신에게서 한 걸음 물러서 바라보자.

- ChatGPT

덜어냄이 여는 친밀함: 경외와 절제의 한길

시편 25:14는 “여호와의 친밀하심이 그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있다”고 선언한다. 주역의 손(損)괘는 산 아래 고요한 못의 형상으로 “군자는 분노를 거두고 욕망을 막는다(徵忿窒慾)”고 가르친다. 전통은 다르지만 두 문장은 한 줄로 수렴한다. 높임이 비움을 낳고, 비움이 친밀을 낳는다. 이 글은 그 공통 축을 따라, 경외와 절제가 어떻게 약속의 현실성을 드러내는지 탐색한다.

경외: 높이를 기억하는 태도

경외는 두려움의 굴복이 아니라 크고 선한 실재 앞에서의 올바른 위치 찾기다. 경외하는 마음은 스스로를 과장하지 않는다. 높이에 대한 감각이 돌아오면, 판단은 느려지고 말은 정제된다. 그 느림 속에서 타인의 사정과 역사의 결이 들린다. 경외가 세우는 이 균형은 친밀의 시작점이다. 친밀은 소유가 아니라 존중의 거리에서 자라기 때문이다. 내가 중심에 서려는 충동을 내려놓을 때, 관계는 방어를 풀고 비로소 상호성의 문을 연다.

손(損): 넘침을 막는 고요

손괘의 풍경은 산과 못의 대비다. 산이 높을수록 못은 더 고요해야 그 형상이 온전히 비친다. 손은 덜어냄을 말하지만 결핍을 미화하지 않는다. 무질서한 증식을 멈추어 균형을 회복하라는 뜻이다. 분노는 옳음을 태워버리고, 욕망은 사랑을 흐리게 한다. 둘 다 넘침에서 비롯된다. 고요한 못이 파문을 가라앉히듯, 절제는 마음의 수면을 지켜 사실의 윤곽을 또렷하게 한다. 덜어낸다는 것은 포기라기보다 관계의 해상도를 높이는 선택이다.

친밀과 언약: 소유가 아닌 응답

시편이 말하는 친밀은 휘몰아치는 감정의 밀착이 아니다. 소유하려는 손길이 강해질수록 친밀은 도망간다. 반대로 경외가 중심을 세우고 손의 절제가 여백을 마련하면, 신뢰가 스며든다. 신뢰가 자라면 언약은 먼 하늘의 암호문이 아니라 삶의 방향으로 체감된다. 약속은 말보다 응답으로 확인된다. 내가 붙드는 힘이 아니라, 다가오심에 합당하게 비워 둔 공간에서 약속의 빛이 비친다.

비움의 역설: 결핍이 아닌 충만의 통로

덜어냄은 흔히 손해로 오해된다. 그러나 불필요한 것을 덜어야 본질이 제자리를 찾는다. 과시를 덜면 진실이 보이고, 과속을 덜면 관계가 숨을 쉰다. 욕망의 소음을 낮출수록 사소한 친절이 더 크게 들리고, 분노의 열을 식힐수록 정의는 오래 지속된다. **비움은 충만의 전실(前室)**이다. 빈 공간이 있어야 빛이 들어오고, 여백이 있어야 선율이 흐른다. 친밀 역시 여백에서 머문다. 고요한 마음의 물면에만 상대의 얼굴이 뒤틀림 없이 비친다.

두 문장은 서로의 해설이 된다. 경외는 높이를 기억하게 하고, 손의 절제는 넘침을 막아 마음의 표면을 지킨다. 그리고 그 표면 위로 이미 주어진 약속의 빛이 드러난다. 결국 요지는 간명하다. 경외로 낮추고 절제로 비우라—그러면 친밀은 응답으로 찾아오고, 언약은 방향으로 보일 것이다. 고요한 못이 산을 비추듯, 덜어낸 마음은 거룩한 친밀을 맑게 비춘다.

- 이미지

비워진 마음 위로, 오래된 약속의 빛이 고요히 내려앉는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