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님과 함께하는 나의 하루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이사야 49:15).
- 다산, 어른의 하루
계명이기 자자위선자 순지도야 계명이기 자자위리자 척지도야(鷄鳴而起 孜孜爲善者 舜之徒也 鷄鳴而起 孜孜爲利者 蹠之徒也, 맹자).
해석: 아침부터 부지런히 선한 일을 행하면 순임금의 무리요, 부지런히 이익을 추구하면 도척의 무리다.
- 평카박의 다짐
항상 나를 지켜보시는 분이 계시기에 선한 일들을 해나갈 수 있고 해나가야 한다.
- ChatGPT
기억하는 사랑, 새벽의 선택
한 구절은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하리라”(성서 이사야 49:15)를 전한다. 다른 한 구절은 “닭이 울면 일어나 부지런히 선을 구하면 순임금의 무리요, 닭이 울면 일어나 부지런히 이익을 구하면 도척의 무리라”(맹자)라고 말한다. 하나는 끝내 잊지 않는 사랑의 약속, 다른 하나는 새벽에 무엇을 좇는지가 한 인간의 방향을 가른다는 분별이다. 두 문장은 함께 이렇게 묻는다. 우리를 사람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이며, 매일의 선택은 어디로 우리를 데려가는가.
잊지 않는 마음: 관계가 존재의 근거가 될 때
이사야의 구절은 생물학적 모성의 본능을 넘어선다. “혹시 잊을지라도”라는 단서는 인간의 기억과 감정이 때로 흐트러질 수 있음을 인정한다. 그럼에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하리라”는 선언은, 관계가 조건을 넘어 존재의 이유가 된다는 뜻이다. 사랑은 실적이나 효율로 환산되지 않는다. 대상의 쓸모나 성취에 따라 가감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있다’는 사실 때문에 지속된다. 잊지 않는 마음은 타자를 소유로 대하지 않고, 그를 목적 그 자체로 승인하는 태도다.
새벽의 갈림길: 선과 이익의 질서
맹자는 ‘닭이 울면’이라는 일상의 리듬을 빌려 인간의 내적 질서를 가른다. 모두가 같은 시간에 눈을 뜬다. 그러나 누구는 선(善)을, 누구는 이익(利)을 좇는다. 여기서 선과 이익은 단순한 도덕적 미화나 이윤 혐오가 아니다. 선은 관계를 보전하는 질서, 이익은 관계를 수단화하는 계산을 가리킨다. 이익이 나쁘다는 말이 아니라, 이익이 목적이 되는 순간 사람은 타자를 가격표로 본다. 반대로 선이 우선할 때 이익은 자리를 찾는다. 선이 이익의 방향을 규정하면, 이익은 더 넓은 공동선을 지향하는 도구가 된다.
기억과 방향의 윤리
이사야가 말하는 ‘잊지 않음’은 존재를 향한 근원적 승인이고, 맹자가 말하는 ‘새벽의 선택’은 그 승인을 일상에서 실천하는 방향이다. 사랑의 기억이 없다면 새벽의 성실은 쉽게 계산으로 기울고, 방향의 염결함이 없다면 사랑의 약속은 감상으로 소멸한다. 둘이 합쳐질 때 비로소 삶은 견고해진다.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는 선언이 우리 안에서 나는 오늘 무엇을 위해 일어나는가라는 질문으로 번역될 때, 사람은 타인의 안녕을 기준으로 자신의 능력과 욕망을 배열한다.
‘잊지 않음’이 만들어내는 시간의 구조
사랑은 시간을 다르게 흐르게 한다. 잊지 않는 마음은 과거의 상처를 되새기는 집착이 아니라, 상대의 미래를 내 책임의 범주에 넣는 결심이다. 그래서 사랑은 기다림을 가능하게 한다. 서두르지 않고, 포기하지 않으며, 쉽게 규정하지 않는다. 기다림은 무력함이 아니라 관계의 가능성을 신뢰하는 힘이다. 이 힘은 우리의 언어를 단정하게 하고, 행동을 단호하게 하며, 공동체의 기준을 바꿔 놓는다. 평가와 효율이 우선인 문화에서 ‘잊지 않음’은 느린 길처럼 보이지만, 그 느림은 사람을 남기고 관계를 지킨다.
새벽의 성실: 무엇을 먼저 둘 것인가
맹자는 성실 그 자체보다 무엇을 성실히 하느냐를 묻는다. 부지런함은 칭찬받기 쉽다. 그러나 부지런히 잘못된 것을 좇으면 속도가 죄를 키운다. 반대로 선을 향한 성실은 때로 더디고 불편하다. 타인의 고통을 감지하고, 기준을 다시 세우며, 손익계산을 잠시 미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길은 사람을 사람답게 만든다. 부지런함의 도덕화가 아니라, 우선순위의 윤리화—이것이 새벽의 질문이다.
사랑의 기억이 방향을 결정한다
두 문장은 결국 하나의 명제로 수렴한다. 잊지 않는 사랑은 선을 기준으로 삶의 방향을 정하고, 그 방향은 매일의 선택을 통해 현실이 된다. 어머니가 아이를 잊지 않듯, 우리가 서로를 목적 그 자체로 기억할 때, 새벽은 이익의 조급함이 아니라 선의 담대함으로 열린다. 그 담대함은 한 사람의 일상을 넘어 공동체의 규칙을 바꾼다. 사랑의 기억이 있는 곳에서, 이익은 수단이 되고, 시간은 기다림이 되며, 사람은 목적이 된다. 그리고 그때 비로소 우리는 묻는다. 오늘의 성실은 누구를 살리기 위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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