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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1.29(목) 포기 없는 사랑

평카박 2026. 1. 29.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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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과 함께하는 나의 하루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베드로전서 4:8).

- 다산, 어른의 하루

가무서호 신무재호 이목불총명호 하고욕자폭이자기야(家無書乎 身無才乎 耳目不聰明乎 何故欲自爆而自棄耶, 여유당전서).

해석: 공부할 책이 없는 것도 아니고, 재주가 없는 것도 아니고, 총명하지 않은 것도 아닌데 왜 미리 포기하느냐?

- 평카박의 다짐

사랑하기를 포기하지 말자.

- ChatGPT

덮어 주는 사랑, 버리지 않는 나: 회복의 이중 윤리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는다”는 말은 인간의 결함을 사라지게 만든다는 주문이 아니다. 그것은 상처를 정면으로 드러내면서도, 그 상처가 더 깊어지지 않도록 감싸는 태도를 뜻한다. 여기에 “집에 책이 없고, 재능이 없고, 눈과 귀가 밝지 않다 하여 어찌 스스로를 폭파하고 버리려 하느냐”는 질책이 겹쳐지면, 우리는 한 가지 분명한 메시지를 듣게 된다. 타인에게는 덮어 주는 사랑이, 자신에게는 포기하지 않는 존엄이 필요하다는 것. 이 두 문장은 서로를 보완하며 개인과 공동체가 다시 일어서는 가장 현실적인 길을 가리킨다.

사랑은 상처를 지우지 않고 ‘덮는다’

덮는다는 말은 감추어 부정하자는 뜻이 아니다. 겨울밤 이불이 찬 몸을 덮어 열을 잃지 않게 하듯, 사랑은 관계의 체온을 보존해 회복의 시간을 벌어 준다. 비난이 강풍이라면, 덮음은 바람막이다. 잘못을 ‘없던 일’로 만들지 않고, 그 잘못이 인간을 전부 규정하지 않도록 경계를 쳐 준다. 그래서 덮음은 도덕의 느슨함이 아니라, 변화를 가능케 하는 보전 장치다. 내 잘못이 곧 나의 전부가 아니라는 확신 위에서만 사람은 방향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자폭자기(自爆自棄)를 거부하는 자기 보존

“스스로를 폭파하고 버리지 말라”는 말은 능력주의의 반대편에서 울린다. 배경이 빈약하고, 재능이 둔하고, 감각이 둔하다는 사실이 곧 한 인간의 가치가 될 수는 없다. 자기 부정은 책임을 강화하지도, 타인과 세계에 대한 관심을 넓히지도 못한다. 오히려 삶의 동력을 끊어 버린다. 자기 보존은 변명의 연장이 아니라, 변화를 시도할 최소한의 에너지—존엄을 지키는 장치다. “나는 여전히 의미 있는 존재”라는 바닥의 확신이 있어야 배움도, 일도, 관계도 이어진다.

관계와 자아의 상호 강화 고리

덮어 주는 사랑과 포기하지 않는 자기 보존은 따로 작동하지 않는다. 누군가 내 결함을 전부가 아니라고 말해 줄 때, 나는 비로소 변화를 감당할 용기를 얻는다. 반대로 내가 나를 버리지 않을 때, 타인의 실수에도 더 관대해진다. 이렇게 개인의 내적 태도와 공동체의 윤리는 서로를 북돋우는 고리를 만든다. 한쪽만 작동하면 왜곡이 발생한다. 덮음만 있고 변화가 없으면 방임이 되고, 자기 보존 없이 사랑만 외치면 자기 파괴로 귀결된다. 균형은 이 둘의 공진(共振)에서 생긴다.

금으로 메운 그릇의 비유

깨진 그릇의 금줄(킨츠기)은 좋은 은유다. 금은 금이기 때문에 균열을 없애지 않는다. 오히려 금이 들어간 자리가 가장 눈에 띈다. 그러나 그 눈에 띔은 흉이 아니라 이야기다. “여기 금이 흐르는 만큼, 이 그릇은 한 번 더 살아났다.” 사랑이 덮는다는 것은 바로 이 금줄을 더해 주는 일이다. 균열은 기록되고 보존되지만, 그 위로 더 강한 선이 놓인다. 자기 보존은 그 금줄을 감당할 그릇의 의지다. “나는 아직 쓸 수 있다”는 선언이 있어야 금은 제 일을 한다.

결핍을 대하는 두 가지 시선

결핍은 늘 존재한다. 교양의 결핍, 재능의 결핍, 감각의 결핍. 사랑은 타인의 결핍을 빼앗아 오지 않는다. 대신 그 결핍이 누군가의 정체성이 되지 않도록 지켜 준다. 자기 보존은 자신의 결핍을 순순히 인정하되, 그것을 이유로 생을 포기하는 단락을 닫는다. 인정과 포기의 경계를 가르는 문장은 간단하다. “나는 부족하지만, 그러므로 멈추지 않는다.” 이 간단한 문장이 개인의 내구성을 높이고, 그 내구성이 다시 공동체의 신뢰를 두껍게 만든다.

덮음이 주는 시간, 일어섬이 채우는 내용

사랑이 덮는 순간, 관계는 시간을 얻는다. 급한 심판 대신 숨 고르기가 허락된다. 그 시간은 텅 빈 공백이 아니다. 자신을 버리지 않겠다는 결심이 그 시간을 채운다. 사과가 가능해지고, 배움이 이어지고, 재시도가 삶의 문법이 된다. 덮음이 없다면 시간은 닫히고, 자기 보존이 없다면 시간은 헛돌기 쉽다. 회복은 “보호된 시간”과 “포기하지 않는 내용”이 만나는 접점에서 일어난다.

덮어 주고, 일어서기

두 문장이 함께 가리키는 길은 명확하다. 타인의 잘못 위에 이불을 덮어 주고, 자신의 결핍 앞에서 등을 돌리지 않는 것. 사랑은 관계의 온도를 지키고, 자기 보존은 존재의 온도를 지킨다. 이 두 온도가 겹치는 곳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준다. 결국 삶은 완전함이 아니라 회복의 연속이다. 금이 흐르는 자리마다 이야기가 생기고, 그 이야기마다 한 사람의 존엄이 빛난다. 덮어 주는 사랑과 버리지 않는 나—이 두 가지가 우리의 내일을 붙든다.

- 이미

금으로 메운 그릇에서 새순이 돋아나듯, 사랑은 상처를 감싸고 성장은 그 안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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