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님과 함께하는 나의 하루
내가 간구하는 날에 주께서 응답하시고 내 영혼에 힘을 주어 나를 강하게 하셨나이다(시편 138:3).
- 다산, 어른의 하루
소이비본말야 연지자기과 진자이중 약천명불윤 수일거이분지가야(所以備本末也 然知者旣寡 嗔者以衆 若天命不允 雖一炬以焚之可也, 자찬묘지명).
해석: 학문의 처음과 끝을 갖췄지만 알아주는 이는 적고 나무라는 이는 많다. 만약 하늘이 인정해주지 않는다면, 저 횃불로 내 모든 책들을 태워버리리라.
- 평카박의 다짐
기도로 하나님의 뜻을 올바로 해낼 수 있어야 한다.
- ChatGPT
응답의 빛과 성찰의 거울: 간구와 천명 사이에서 강해지는 영혼
“내가 간구하는 날에 주께서 응답하시고 내 영혼에 힘을 주어 나를 강하게 하셨나이다(시 138:3).” 이 짧은 고백은 삶의 한복판에서 느끼는 역설을 담고 있습니다. 바깥의 사정은 그대로인데, 안쪽이 달라져 버리는 순간. 상황이 즉시 바뀌지 않아도, 마음의 중심이 새로 세워져 “강해졌다”고 말하게 되는 경험 말입니다.
여기에 다산 정약용의 자찬묘지명에 전해지는 한 대목이 겹쳐집니다. 그는 자신이 쌓아 온 공부와 저술을 “본(本)과 말(末)”—곧 자기 수양과 세상을 위한 일—로 정리해 놓습니다. 그런데 곧이어 이렇게 토로합니다. “알아주는 이는 적고(知者旣寡), 성내는 이는 많으니(嗔者以衆), 하늘의 뜻이 허락하지 않으면(若天命不允) 한 번의 불로 태워버려도 된다.” 삶을 바친 일이 오히려 비난과 오해로 돌아올 때의 씁쓸함, 그리고 그럼에도 끝까지 자신을 추슬러 보려는 태도가 한 문장 안에 함께 있습니다.
간구의 응답이 주는 ‘내적 근력’
시편의 표현은 흥미롭습니다. “응답”의 결과가 곧바로 외적 승리나 문제 해결로 제시되지 않습니다. 대신 **“내 영혼에 힘”**이 들어옵니다. 즉, 응답은 때로 사건의 이동이 아니라 사람의 내면을 이동시킵니다. 두려움이 주도하던 마음에 용기가 들어오고, 무너졌던 자존이 다시 서며, “버틸 수 없음”이 “버틸 수 있음”으로 바뀝니다. 같은 폭풍이 불어도, 중심이 달라지면 항해가 달라지니까요.
이 힘은 과시적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조용하고 단단합니다. 누군가에게 인정받아 생기는 기세가 아니라, “내가 누구에게 붙들려 있는가”가 정리되면서 생기는 안정감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이 강함은 흔히 겸손한 강함으로 나타납니다.
다산의 고백: ‘본말을 갖추려 했으나, 알아주는 이는 적었다’
다산은 자찬묘지명을 한 편이 아니라, 무덤에 넣는 요약본(광중본)과 문집에 싣는 상세본(집중본) 두 가지로 남겼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정리해 “왜곡되지 않게 남기려는” 의지가 그 형식 자체에 담겨 있습니다.
그가 말한 “본말”은 단순한 분류가 아니라 삶의 균형에 대한 선언처럼 읽힙니다. 안으로는 자신을 다스리고(본), 밖으로는 세상을 책임지려 한 것(말)—그런데 현실은 냉정합니다. “아는 사람은 적고 성내는 사람은 많다.” 진심으로 쌓아 올린 일이 오해 속에 흔들릴 때, 사람은 자주 두 갈래로 갈립니다. 더 크게 소리치거나, 혹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어지거나. 다산의 “불로 태워버려도 된다”는 말은 바로 그 경계의 순간을 솔직하게 보여줍니다.
오해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이유
시편의 고백과 다산의 토로는 시대도 언어도 다르지만, 한 지점에서 만납니다. 인간이 인간의 평가만으로는 버티기 어렵다는 사실입니다.
다산이 경험한 “알아줌의 결핍”은 단지 개인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의미를 어디에 묶어 두었는가를 묻습니다. 사람의 칭찬과 비난은 늘 출렁이고, 그 파도 위에 삶의 가치를 올려두면 결국 흔들립니다. 그래서 어떤 순간에는 “응답”이 필요합니다. 즉, 내 마음이 다시 붙들릴 자리—내가 나를 설득하지 않아도 되는 근거—가 필요합니다. 시편이 말하는 ‘영혼의 힘’은 바로 그 자리에서 오는 힘처럼 보입니다.
또 하나의 공통점은 자기 성찰입니다. 다산은 자신의 생을 “기록”으로 돌아보고, 시편의 화자는 자신의 마음을 “간구”로 드러냅니다. 둘 다 ‘바깥’이 아니라 ‘안’을 다루며, 그 안을 정직하게 바라볼 때 사람은 오히려 강해집니다. 강해진다는 건 더 무정해지는 게 아니라, 더 분명해지는 것입니다.
남는 것: 빛을 향한 간구, 거울 앞의 정직함
우리는 종종 “강해지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사실은 “상처받지 않고 싶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상처가 사라지지 않는 삶에서 진짜 강함은 상처의 부재가 아니라 상처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 능력에 가깝습니다. 시편은 그 중심을 “응답받는 간구”에서 찾고, 다산의 문장은 그 중심을 “천명 앞에서의 절제와 성찰”로 붙잡으려 합니다.
그러니 두 문장을 함께 읽으면 이런 결론에 닿습니다.
간구는 우리를 하늘 쪽으로 들어 올리고, 성찰은 우리를 진실 쪽으로 내려놓는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사람은 조용히 단단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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