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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말 + 좋은 말 = 좋은 말

'26.02.20(금) 知志

평카박 2026. 2. 20.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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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과 함께하는 나의 하루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이사야 40:31).

- 다산, 어른의 하루

비학무이광재 비지무이성학(非學無以廣才 非志無以成學, 무후전서).

해석: 배우지 않으면 재능을 펼칠 수 없고 뜻이 없으면 학문을 성취할 수 없다.

- 평카박의 다짐

여호와께 힘을 얻어 일반/특별 계시를 통해 배우고 뜻을 세워야 한다.

- ChatGPT

기다림이 힘이 되고, 뜻이 배움이 되는 순간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이사야 40:31)라는 문장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힘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기다림’이라는 언어로 말합니다. 여기서 앙망은 막연한 체념이 아니라, 마음의 중심을 한 곳에 고정해 두는 신뢰의 자세에 가깝습니다. 반면 “비학무이광재 비지무이성학(非學無以廣才 非志無以成學)”은 배움과 뜻을 분리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배우지 않으면 재능이 넓어지지 않고, 뜻이 없으면 배움이 끝내 완성되지 않는다는 경구입니다. 둘은 서로 다른 전통에서 왔지만, 한 가지 결론을 향해 나아갑니다. 삶을 끌어올리는 힘은 ‘외부의 속도’가 아니라 ‘내면의 방향’에서 생긴다는 것입니다.

새 힘은 ‘더 세게’가 아니라 ‘다르게’ 온다

우리는 보통 힘을 ‘버티는 근육’처럼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사야의 비유는 독수리의 날갯짓을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상승기류’를 떠올리게 합니다. 독수리는 무작정 힘으로만 날지 않습니다. 바람의 흐름을 읽고, 올라오는 기류를 타고, 더 높은 곳으로 이동합니다. 여기서 ‘새 힘’은 단순히 체력이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저항을 다른 방식으로 통과하게 하는 힘입니다. 달려도 지치지 않고 걸어도 피곤하지 않다는 표현은, 현실의 무게가 사라진다는 뜻이 아니라, 그 무게를 견디는 구조가 새로워진다는 뜻에 더 가깝습니다. 기다림은 시간을 낭비하는 정지가 아니라, 마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중심을 잡는 ‘정렬’입니다.

배움은 재능을 넓히고, 뜻은 배움을 완성한다

후한서의 문장은 매우 현실적입니다. 배움은 사람의 세계를 넓힙니다. 이해가 넓어지면 두려움이 줄고, 선택지가 늘어나며, 타인을 바라보는 눈이 깊어집니다. 그런데 그 배움은 저절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지식은 쌓여도 삶을 바꾸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비지무이성학(뜻이 없으면 배움이 이루어지지 않는다)”이 뒤에 붙습니다. 여기서 ‘뜻’은 단순한 결심이나 기분이 아니라, 지속성을 낳는 중심 가치입니다. 재능을 넓히는 것은 학(學)이지만, 그 넓어진 세계를 한 방향으로 묶어 ‘자기 것이 되게 하는 힘’은 지(志)입니다. 배움은 넓히고, 뜻은 깊게 만듭니다.

신뢰의 기다림과 배움의 뜻이 만나는 지점

이사야의 ‘앙망’과 후한서의 ‘지(志)’는 서로를 비추는 거울 같습니다. 앙망은 궁극의 신뢰를 향해 마음을 고정하는 것이고, 뜻은 삶의 의미를 향해 마음을 고정하는 것입니다. 즉 둘 다 내면의 축을 세우는 행위입니다. 축이 없으면 사람은 쉽게 소진됩니다. 외부의 변화에 즉각 반응하느라 마음이 분산되고, 과도한 비교와 불안 속에서 에너지가 새어 나갑니다. 반대로 축이 세워지면 삶의 속도는 변하지 않아도, 삶의 ‘소모 방식’이 달라집니다. 같은 거리의 달음박질도, 같은 길의 걸음도, 소진이 아니라 축적이 됩니다. 신뢰는 불안을 줄이고, 뜻은 방황을 줄입니다. 불안과 방황이 줄어들 때, 사람은 놀라울 만큼 오래 갈 수 있습니다.

독수리의 비유가 전하는 삶의 기술

독수리가 하늘로 오르는 장면이 강렬한 이유는, 그것이 “도약”이면서 동시에 “지속”이기 때문입니다. 번쩍이는 성공의 순간만이 아니라, 그 순간을 가능하게 하는 보이지 않는 흐름—바람을 읽는 감각, 때를 기다리는 인내, 방향을 놓치지 않는 집중—이 함께 담겨 있습니다. 신뢰의 기다림은 ‘때’를 분별하게 하고, 배움의 뜻은 ‘길’을 분명하게 합니다. 그래서 두 문장은 서로 다른 언어로 같은 진실을 말합니다. 사람은 더 빨리 달려서가 아니라, 더 올바른 바람을 타서 멀리 간다. 그리고 그 바람은 바깥에서만 오지 않습니다. 마음의 중심이 어디에 붙어 있는지, 무엇을 향해 뜻을 두는지에 따라, 같은 현실도 전혀 다른 기류가 됩니다.

이사야 40:31은 신뢰가 새 힘을 준다고 말하고, 후한서는 배움과 뜻이 사람을 완성한다고 말합니다. 둘을 통합하면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신뢰로 마음의 축을 세우고, 배움과 뜻으로 삶의 방향을 다듬을 때, 우리는 지치지 않는 ‘새 힘’의 구조를 얻는다. 힘은 단지 더 많은 에너지의 문제가 아니라, 에너지가 새지 않게 하는 ‘중심’의 문제입니다. 결국 새 힘이란, 오늘의 무게를 없애는 기적이 아니라, 오늘의 무게를 견디고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내면의 질서입니다.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가듯, 삶도 그렇게 올라갑니다—방향이 분명할 때, 그리고 그 방향을 붙잡고 기다릴 줄 알 때.

- 이미

기다림의 신뢰와 배움의 뜻이 하나로 모일 때, 우리는 독수리처럼 지치지 않고 더 높은 곳으로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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