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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1.12(수) 바른 마음과 바른 꿈

평카박 2025. 11. 12.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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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과 함께하는 나의 하루

나는...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니라 (베드로전서 5:1).

- 다산, 어른의 하루

심부재언 시이불견 청이불문 식이부지기미 차위수신 재정기심 (心不在焉 視而不見 聽而不聞 食而不知其味 此謂修身 在正其心, 대학).

해석: 마음이 없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고, 먹어도 그 맛을 모른다. 이를 일러 수신이라 하니 그 마음을 바르게 함에 있다.

- 평카박의 다짐

다른 것에 휘둘리지 않는 바른 마음을 가지고 주님이 주신 꿈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 ChatGPT

마음을 바로 세우는 증언, 고난을 건너는 영광

두 문장이 서로 다른 전통에서 왔지만, 한 가지 진실을 비춘다.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라는 고백과, “마음이 거기에 있지 않으면 보고도 보지 못하고 듣고도 듣지 못한다. 이것이 수신(修身)이니, 정기심(正其心)에 있다”는 가르침. 하나는 고난을 견디며 의미를 증언하는 태도를 말하고, 다른 하나는 마음의 방향이 현실의 깊이를 여는 열쇠임을 말한다. 둘을 합치면, 마음이 바르게 서 있을 때 고난은 영광을 준비하는 자리가 된다는 통찰이 드러난다.

고난을 ‘보는’ 법: 관중이 아닌 증인

고난 앞에서 사람은 쉽게 구경꾼이 된다. 그러나 증인은 현장에서 떠나지 않는다. 마음이 자리를 지킬 때, 우리는 고통을 회피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본다. 대학의 말처럼 마음이 떠나 있으면 시각과 청각은 있어도 현실의 핵심을 놓친다. 반대로 마음이 정위(正位)하면, 타인의 상처 속에서도 인간의 품위와 연대의 가능성을 ‘본다’. 증언은 이렇게 탄생한다. 보고 들은 것을 외면하지 않는 집중, 즉 마음의 현존에서.

영광에 ‘참여’하는 길: 결과가 아니라 형성

영광은 성취의 훈장이라기보다, 고난 속에서 길러진 인격이 빚는 빛이다. 참여한다는 말은 우연히 얻는 관람권이 아니라, 내면의 형성에 따라 열리는 자격을 뜻한다. 여기서 동양의 정심은 서양의 성품 형성과 접점을 이룬다. 동요하는 욕망이 아니라, 곧은 마음이 의도를 맑게 하고 판단을 분별 있게 만든다. 그러면 동일한 현실도 다른 빛을 띤다. 똑같이 식탁에 앉아도 마음이 바르면 ‘맛’을 안다. 고난이라는 음식에서도 의미의 맛을 알아차린다. 이때 영광은 먼 미래의 상징이 아니라, 이미 현재의 태도 속에서 시작된다.

리더십의 핵심: 돌봄과 수신의 접점

고난의 증언은 개인적 미덕에 머물지 않는다. 누군가를 돌보는 자리에 선다면, 수신과 정심은 공동체의 안전망이 된다. 마음이 흐트러진 권한은 위험하지만, 정심 위의 권한은 보호의 힘을 낳는다. 양떼를 살피는 목자의 이미지는 바로 그런 리더십을 가리킨다. 유교의 연쇄(수신—제가—치국)도 동일한 구조를 가진다. 바르게 선 마음이 관계를 지키고, 관계가 더 큰 질서를 세운다. 고난은 그 마음을 검증하고 단련하는 훈련장이다.

두 전통은 서로 다른 언어로 같은 지도를 건넨다. 마음을 바로 세워 현존하라. 그러면 고난은 의미를 감추지 못하고, 그 의미를 증언하는 삶은 자연스레 영광에 참여한다. 정심(正心)은 고난을 통과해 영광으로 이르는 조용한 다리다.

- 이미지

바른 마음으로 고난을 응시할 때, 그 자리가 곧 영광을 비추는 증언의 무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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