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ke A Better Human Life

모든 사람이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The Truth

좋은 말 + 좋은 말 = 좋은 말

'25.12.12(금) 때가 있음을 알아야..

평카박 2025. 12. 12. 09:19
728x90

- 주님과 함께하는 나의 하루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이사야 30:18).

- 다산, 어른의 하루

혹생이지지 혹학이지지 혹곤이지지 급기지지일야(或生而知之 或學而知之 或困而知之 及其知之一也, 중용).

해석: 어떤이는 태어나면서부터 알고, 어떤 이는 배워야 알며, 어떤 이는 곤란을 겪어야 알지만, 과정은 달라도 그 깨달음은 모두 같다.

- 평카박의 다짐

살면서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실 때가 있음을 깨닫게 된다.

- ChatGPT

기다림의 은혜, 깨달음의 길이 만나는 자리

한 구절은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사야 30:18)을 말하고, 다른 한 구절은 “혹 생이지지, 혹 학이지지, 혹 곤이지지, 급기 지지 일야(중용)”라 하여, 태어날 때부터, 배움을 통해, 혹은 곤란 속에서 알게 되는 서로 다른 길을 말합니다. 하나는 하늘의 기다림, 다른 하나는 인간의 앎의 과정입니다. 두 문장은 서로 멀리 있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한 지점에서 만납니다. 기다림이 만든 여백에서 앎이 무르익고, 다양한 앎의 길은 결국 은혜라는 온기에 닿습니다. 이 글은 그 만남의 의미를 더듬습니다.

기다림의 시간은 빈 시간이 아니다

성서의 “기다리심”은 소극적 포기가 아니라 적극적 환대입니다. 재촉하지 않고, 준비되지 않은 열매를 억지로 따내지 않으며, 우리의 속도를 존중하는 태도입니다. “일어나시리니”라는 표현 안에는 결정적 순간에 다가오셔서 긍휼로 응답하겠다는 약속이 들어 있습니다. 따라서 기다림은 공백이 아니라 가능성의 장(場)입니다. 이 여백 속에서 우리는 자신을 방어하던 힘을 내려놓고, 삶을 새로 읽을 여유를 되찾습니다. 기다리는 은혜는 우리의 실패마저 이야기의 일부로 품어, 서두르던 발걸음에 방향을 돌려 줍니다.

앎의 다양성과 목적의 단일성

중용의 문장은 앎에 이르는 세 경로를 나열하지만, 끝에서 “일야”—결국 하나임을 선언합니다. 누군가는 직관처럼 깨닫고, 누군가는 오래 배우며, 또 어떤 이는 골짜기를 통과하듯 곤란을 지나 알아갑니다. 출발선과 속도는 각기 다르지만, ‘앎’의 목적은 하나입니다. 그것은 우월감의 근거가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고 살리는 힘입니다. 이 관점은 비교와 서열의 문법을 해체합니다. 남보다 빨리 아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무엇을 위해’ 아느냐가 핵심이 됩니다.

은혜와 앎의 접점: 긍휼이라는 빛

기다리시는 하늘과 다양한 앎의 길이 만나는 접점에는 긍휼이 있습니다. 진정한 앎은 타인을 판단의 대상으로 만들지 않고, 자신을 절대 기준으로 세우지 않습니다. 오히려 “나 또한 과정 중에 있다”는 자각을 낳아, 타인의 더딤을 견딜 수 있게 합니다. 은혜는 이 앎을 따뜻하게 비춥니다. 알수록 단단해지는 것이 아니라, 알수록 부드러워지는 변화—그것이 긍휼의 열매입니다. 그래서 앎이 은혜를 만나면 지식은 관계를 살리는 지혜로 변하고, 기다림은 단순한 인내를 넘어 환대의 언어가 됩니다.

속도보다 방향, 성과보다 온기

우리 사회는 빠름을 능력으로 여깁니다. 하지만 두 문장이 함께 가리키는 기준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입니다. 앎이 어디로 향하는가, 그 끝에 어떤 인간이 서는가가 중요합니다. 은혜는 결과의 성과를 과장하지 않고, 과정의 진실을 지켜 줍니다. 넘어지며 알게 된 것들이 결코 값싸지 않은 이유입니다. 곤란을 지나 얻은 앎은 타인의 상처 앞에서 가벼운 해답을 경계하게 만듭니다. 그 절제와 배려가 바로 긍휼의 얼굴입니다.

오늘을 비추는 위로

지금 우리가 걷는 자리와 속도가 어떠하든, 우리를 기다리는 은혜가 먼저 있습니다. 어떤 이는 빠르게 이해하고, 어떤 이는 오래 배워 알며, 또 다른 이는 실패와 막막함 속에서 겨우 손에 쥡니다. 그러나 도착은 하나입니다. 그곳은 비문 하나 없는 조용한 빛의 마당, 시간을 견딘 앎이 따뜻함을 얻는 자리입니다. 기다림은 우리를 늦추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사람다움으로 도착하도록 돕기 위해 존재합니다. 그러니 조급함 대신 방향을, 성과 대신 온기를 기억합시다. 은혜는 이미 우리 편이며, 앎은 그 빛을 알아보는 눈을 길러 줍니다. 그리고 그 둘이 만나는 순간, 우리는 서로를 더 깊이 살리는 사람이 됩니다.

- 이미지

서로 다른 길이 한 곳의 빛으로 모이는 새벽, 기다리는 은혜와 도착한 깨달음.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