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님과 함께하는 나의 하루
이 일이 그날에 남은 백성의 눈에는 기이하려니와 내 눈에야 어찌 기이하겠느냐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스가랴 8:6).
- 다산, 어른의 하루
천지생물 병사기량 해위심우과려 황황급급 유공확지실기재(天之生物 竝賜其糧 奚爲深憂過慮 遑遑汲汲 唯恐拏攫之失機哉, 여유당전서).
해석: 하늘이 만물을 낳을 때는 아울러 그가 먹을 양식도 함께 주신다. 그런데 어찌 근심 때문에 방황하면서 기회를 놓칠까 두려워하는가?
- 평카박의 다짐
사람이기 때문에 이해하지 못하고 두려운 일이 많다.
- ChatGPT
기이함과 염려 사이: 하늘의 시선으로 세상을 다시 보다
두 문장은 서로 다른 시대와 언어를 건너오지만, 한 방향을 가리킨다. 스가랴의 구절은 인간에게는 놀라운 일도 하늘의 눈에는 당연한 질서임을 일깨우고, 여유당의 문장은 “하늘이 만물을 낳았으면 그 양식도 함께 주었다”며 우리의 과도한 염려와 조급함을 부드럽게 꾸짖는다. 한쪽은 신적 시선의 넉넉함, 다른 한쪽은 인간 마음의 궁핍함을 드러낸다. 이 둘을 한데 묶는 중심 주제는 명료하다. 세계는 본래 ‘공급의 질서’ 위에 서 있고, 우리의 불안은 종종 그 질서를 보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다.
인간의 눈에 기이한 것, 하늘의 눈에는 자연스러운 것
우리는 뜻밖의 회복, 고통 뒤의 평안, 막힌 길이 열리는 순간을 ‘기적’이라 부른다. 그러나 스가랴의 말은 물음을 바꾼다. “그날에 남은 백성”에게 놀랍던 일이, 하늘의 눈에는 처음부터 가능하고 합당한 일이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강조되는 것은 물리적 법칙의 파괴가 아니라, 시선의 전환이다. 인간의 시선은 파편적이고 단기적이어서 종종 결론을 서둘러 내리지만, 하늘의 시선은 전체와 시간을 함께 본다. 그 차이가 어떤 사건을 ‘기이함’으로 보이게도, ‘자연스러움’으로 보이게도 만든다.
생명을 먹이시는 질서와 우리의 과도한 계산
여유당의 문장은 간명하다. 하늘이 생명을 주었으면 먹을 것도 함께 주었다. 자연의 순환, 씨앗과 추수, 새의 이동과 바다의 흐름은 생명을 지키는 구조다. 그런데 우리는 그 구조를 신뢰하기보다, “낚아채지 못할까” 두려워 더 많이 움켜쥐려 한다. 조급함은 계산을 낳고, 계산은 서로를 경쟁자로 만든다. 이때 현실의 결핍이 아니라 결핍의 상상력이 우리를 지배한다. 쌓아도 불안하고, 가진 만큼 더 불안해지는 역설이 거기서 시작된다.
‘기이함’과 ‘염려’가 만드는 마음의 기후
인간의 눈이 어떤 일을 ‘기이하다’고 부를 때, 마음속에는 두 가지 기후가 생긴다. 하나는 경이, 다른 하나는 불신이다. 경이는 감사를 낳지만, 불신은 “이 좋은 일이 오래 갈 리 없다”는 의심으로 돌아선다. 여유당이 질타한 “황황급급(遑遑汲汲)”은 바로 이 불신의 언어다. 늘 급하고 바쁘지만 목적은 흐릿하고, 더 움켜쥐기 위해 달리지만 무엇을 놓칠까 두려워한다. 불안은 사건을 비틀어 보게 하고, 조급함은 관계를 소모품으로 만든다.
이 세계를 지탱하는 ‘넉넉함’의 법칙
두 문장이 함께 가리키는 것은 부족의 법칙이 아니라 넉넉함의 법칙이다. 넉넉함의 법칙은 무한 소비를 정당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질서와 절제를 전제한다. 씨앗이 뿌려지고, 시간이 지나 싹이 나며, 때가 차서 거두는 리듬을 존중한다. 우리가 할 일은 그 리듬 안으로 들어가 신뢰의 페이스를 찾는 것이다. 신뢰는 느긋함을 만들고, 느긋함은 타인에게 자리를 내어준다. 그렇게 공동체는 경쟁의 합이 아니라 배려의 밀도로 강해진다.
‘하늘의 시선’이 주는 자유
하늘의 시선을 빌리면, 삶의 우연처럼 보였던 연결들이 필연의 금실처럼 드러난다. 우연히 만난 사람이 길을 열어주고, 뜻밖에 놓친 기회가 더 넓은 길로 이끈다. 그때 우리는 깨닫는다.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손아귀를 느슨히 할 때, 세계의 공급망—자연과 시간, 관계와 공동선—이 우리를 붙든다는 사실을. 스가랴의 ‘기이함’은 신비를 제거하려는 말이 아니라, 신비를 일상의 질서로 끌어오려는 초대다. 여유당의 질책 역시 금욕을 강요하려는 게 아니라, 염려로 흐려진 눈을 씻어 본래의 풍요를 보게 하려는 호소다.
두 문장은 오늘의 도시에도 유효하다. 속도와 비교, 성과로 재단되는 세계에서 우리는 자주 자신을 ‘남은 백성’처럼 느낀다. 하지만 시선을 바꾸면, 놀라웠던 회복도, 때맞춘 도움도, 한 줌의 평안도 사실은 처음부터 세계 안에 새겨진 넉넉함의 문법이었다. 그러니 우리는 덜 움켜쥐고 더 믿을 수 있다. 덜 불안해하고 더 감사할 수 있다. 그럴 때 삶은 기적을 기다리는 드문 축제가 아니라, 날마다 이어지는 충분함의 리듬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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