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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Truth

좋은 말 + 좋은 말 = 좋은 말

'26.03.27(금) 주님이 알아주시는 일

평카박 2026. 3. 27.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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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과 함께하는 나의 하루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 (사도행전 28:31).

- 다산, 어른의 하루

불환인지부기지 환부지인야(不患人之不己知 患不知人也, 논어).

해석: 남이 자신을 알아주지 못할까 걱정하지 말고 내가 남을 제대로 알지 못함을 걱정하라.

- 평카박의 다짐

남이 알아주는게 아니라 주님이 알아주시는 일을 하자.

- ChatGPT

담대함과 이해 사이: 전파와 성찰이 만나는 지점

인간의 삶은 종종 두 가지 방향성 사이에서 균형을 찾으려는 여정으로 보인다. 하나는 자신이 믿는 바를 세상에 드러내고 전하는 ‘표현의 용기’이고, 다른 하나는 타인을 깊이 이해하려는 ‘내면의 성찰’이다.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는 선언과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음을 걱정하지 말고, 내가 남을 알지 못함을 걱정하라”는 가르침은 서로 다른 시대와 맥락 속에서 등장했지만, 이 두 문장은 놀랍게도 하나의 중심 주제로 수렴된다. 그것은 바로 ‘진리를 향한 태도’이다.


전파의 용기: 확신에서 비롯된 담대함

첫 번째 문장은 강한 확신과 행동을 보여준다. 자신의 믿음을 숨기지 않고, 오히려 세상 속으로 나아가 거리낌 없이 전달하는 태도는 단순한 신념을 넘어선다. 이는 자신이 전하는 내용이 보편적 가치와 진리를 담고 있다는 확신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담대함은 외부의 평가나 인정 여부에 흔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 자체로 하나의 사명처럼 작용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거침없음’이다. 이는 무례함이나 독선이 아니라, 내면의 흔들림이 없다는 의미에 가깝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바를 명확히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전하는 데 두려움이 없는 상태다. 이 태도는 개인의 신념을 사회적 가치로 확장시키는 힘을 가진다.


이해의 성찰: 관계를 향한 깊은 시선

반면 두 번째 문장은 전혀 다른 방향을 제시하는 듯 보인다. 타인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 것에 대한 불만을 내려놓고, 오히려 내가 타인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지를 돌아보라는 가르침이다. 이는 자기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타인의 세계를 탐구하는 태도를 강조한다.

이 문장은 인간 관계의 본질을 짚는다. 우리는 종종 인정받지 못함에 집중하지만, 실제로 더 중요한 것은 ‘이해’이다. 타인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단순한 정보 습득이 아니라, 그 사람의 경험과 맥락을 존중하는 행위다. 이러한 태도는 갈등을 줄이고, 더 깊은 연결을 가능하게 만든다.


전파와 이해의 통합: 진정한 소통의 조건

이 두 문장을 함께 놓고 보면, 하나는 외향적이고 다른 하나는 내향적인 태도를 강조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둘은 서로 대립하지 않는다. 오히려 진정한 소통을 위해 반드시 함께 존재해야 하는 요소들이다.

자신의 신념을 담대하게 전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타인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 메시지는 공허하게 들릴 수 있다. 반대로 타인을 깊이 이해하는 사람이라도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지 않는다면, 그 이해는 세상과 연결되지 못한다. 결국 전파와 이해는 서로를 완성시키는 관계에 있다.

진정한 의미의 ‘가르침’은 단순한 전달이 아니라, 상대를 고려한 표현이다. 그리고 진정한 ‘이해’는 침묵이 아니라, 공감 속에서 다시 말로 이어지는 과정이다. 이 두 가지가 만날 때, 비로소 인간의 소통은 깊이와 방향을 동시에 갖게 된다.


균형의 지혜: 삶 속에서 드러나는 태도

우리는 모두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싶어 하면서도, 동시에 타인에게 이해받고 싶어 한다. 하지만 이 두 욕구는 때때로 충돌한다. 이때 필요한 것은 균형이다. 먼저 타인을 이해하려는 태도를 갖고, 그 위에서 자신의 생각을 담대하게 표현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두 문장이 함께 제시하는 삶의 방식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어떻게 말할 것인가’와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가’이다. 이 두 질문을 동시에 붙들 때, 우리는 단순한 전달자가 아니라 진정한 소통자가 될 수 있다.

- 이미

담대하게 전하고, 깊이 이해할 때 비로소 진리는 살아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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